
야오밍(Yao M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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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인가요?
야오밍(중국어 간체자: 姚明, 병음: Yáo Míng, 한자음: 요명, 1980년 9월 12일~)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은퇴한 농구 선수로 중국 농구 협회(CBA)의 상하이 샤크스와 전미 농구 협회(NBA)의 휴스턴 로키츠에서 뛰었다. NBA 올스타전에 서부 콘퍼런스 소속으로 8번 참가하였으며, NBA 올스타팀에 총 8번 선정되었다. 그가 은퇴할 때 당시에는 NBA 현역 선수 중 가장 신장이 큰 선수이기도 하였다. NBA 휴스턴 로키츠에서 선수생활을 할 때에 트레이시 맥그래디와 원투펀치를 이루어서 기대가 되었으나 맥그래디와 야오밍 모두 번갈아 부상당하면서 플레이오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는 못했다. NBA 전설의 센터 샤킬 오닐이 전성기에서 내려왔을 때 넘버원 센터 자리를 놓고 드와이트 하워드 선수와 다투기도 했다. 그리고 드와이트 하워드와의 매치업에서 하워드를 압도하면서 넘버원 센터 자리를 유지하기도 했다. 2008년 8월 8일 베이징 올림픽에서 린하오와 함께 중국 선수단의 기수를 맡았다. 그의 NBA 루키 해는 도큐먼터리 영화 "야오의 한 해"의 주제가 되었고, NBA 분석가 릭 버처와 함께 자신의 저서 "야오: 두 세상에서의 인생"을 쓰기도 하였다. 중국 내 경력 유년기 시절과 CBA 경력 야오밍은 상하이에서 전 프로 농구 선수 출신이었던 부모 야오지위안과 팡펑디 사이에서 외동 아들로 태어났다. 10세 때에 5 피트 5 인치(165cm)로 자랐으며, 그때부터 중국인 스포츠 의사들의 도움으로 7피트 3인치(220cm)로 자라났다. 9세 때에 농구를 시작하면서 주니어 스포츠 학교 팀에서 활약하였다. 13세 때에 CBA 상하이 샤크스의 주니어 팀에 들어가고자 하루에 10시간 동안이나 연습을 하였다고 한다. 4년 동안 주니어 팀에서 활약한 후, 17세의 나이로 샤크스의 성인 선수로 입단하여 한 경기당 득점 10개와 리바운드 8개를 얻었다. 그러나 다음 시즌에는 발 부상을 당하여 단축되고 말았다. 샤크스는 야오밍의 세 번째 시즌과 다음 해에 CBA 결승전에 나갔으나, 둘다 바이 로키츠에게 패하고 말았다. 바이 로키츠의 왕지지가 팀을 떠나 중국 선수로서 처음으로 NBA에 진출하였고, 샤크스는 자신들의 첫 CBA 우승을 하였다. 자신의 마지막 해에 플레이오프에서 야오밍은 한 경기에 38.9점, 리바운드 20.2개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