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마스 만(Thomas M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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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인가요?
토마스 만(독일어: Thomas Mann, 1875년 6월 6일 ~ 1955년 8월 12일)은 독일의 평론가이자 소설가이다. 사상적인 깊이, 높은 식견, 연마된 언어 표현, 짜임새 있는 구성 등에 있어서 20세기 독일 제일의 작가로 알려져 있다. 1929년 노벨 문학상을 비롯, 괴테 상 등 많은 상을 받았다. 토마스 만의 형은 급진적인 작가 하인리히 만이다. 그리고 6명의 자식 중 3명인 Erika Mann, 클라우스 만, Golo Mann들도 또한 독일의 중요한 작가로 성장했다. 생애 문학입문 토마스 만은 평의원이며 곡물 상인이었던 토마스 요한 하인리히 만과 율리아 다 실바 브룬스 부부 사이에서 두 번째 아들로 독일의 뤼베크에서 태어났다. 어머니 율리아는 7살 때 독일로 망명한 부분적 독일계 브라질리안이다. 토마스 만의 아버지가 1891년에 돌아가시면서 회사는 청산되었다. 1893년 뮌헨으로 이주하여 보험 회사의 견습 사원이 되었다. 이때 첫 작품 <호의>가 잡지에 실리면서 문단에 데뷔하였다. 첫 번째 소설 토마스 만은 뤼베크 체육관 기술 분야에 참가하면서, 뮌헨 대학과 기술대학에서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 당시 그는 역사, 경제학, 미술역사, 문학등을 공부하게 되면서 언론계로 커리어를 준비하게 된다. 그는 이탈리아 팔레스트리나에서 살았던 1년을 제외하면 1891년부터 1933년까지 형이자 소설가인 하인리히와 함께 뮌헨에 거주하게 된다. 토마스 만은 보험회사에서 1894년에서 1895년까지 일을 하게 된다. 그가 Simplicissimus에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작가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하게 된다. 토마스 만의 첫 번째 소설은 1898년에 출판된 "꼬마 프리데만 씨"이다. 1901년 부유한 상인의 집안이 4대에 걸쳐 몰락하는 과정을 그린 장편 <부덴브로크스 가의 사람들>을 발표하여 문단에서의 자리를 굳혔다. 그가 동성애 관계를 가졌다는 여러 정황이 있으나 종국에는 카티아 프링스하임과 사랑에 빠졌다. 1905년, 그는 그녀와 결혼을 하며, 6명의 아이들을 낳았다. 제1차 세계대전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자 <프리드리히와 대동맹> <비정치적 인간의 고찰> <독일 공화국에 대하여> 등 정치적 논설을 발표하고, 점차 구낭만주의적인 반지성주의를 벗어나, 새로운 휴머니즘을 품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