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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코르네유

피에르 코르네유(Pierre Corneil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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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인가요?

피에르 코르네유(Pierre Corneille 1606년 6월 6일 ~ 1684년 10월 1일)는 프랑스의 비극 작가로, 몰리에르, 장 라신과 함께 17세기 프랑스의 위대한 3대 극작가 중 하나이다. 그는 “프랑스 비극”의 창립자로 불리며, 거의 40년 동안 희곡을 작성하였다. 일대기 루앙의 성직자의 집안에서 태어나 신앙심이 깊은 분위기 속에서 자라고 예수회(Society of Jesus)가 경영하는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라틴문학, 특히 비극시인 세네카에 심취했다. 후에 에스파냐 연극을 연구하여 그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수학(修學) 후에는 고향 루앙에서 성직자가 되는 한편 사교계에도 출입, 연애사건이 계기가 되어 쓴 희극 <멜리트>를 1629년에 파리에서 상연, 예상외의 성공을 올렸기에 파리로 진출했다. 1633년, 그는 리슐리외 등 4명의 극시인과 함께 코메디 데 튀를을 형성했으나, 소심한 반면 자유를 갈구하는 성격 때문에 탈퇴하여 루앙에 돌아왔다. 그 후 새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여 36년에는 <르 시드>를 발표, 대성공을 거두는 한편, 대논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르 시드>는 이 작가의 성공작인 동시에 프랑스 고전극의 기초를 확립시킨 작품이기도 하다. 청년기사 동 로드리그는 아버지가 받은 치욕을 씻기 위해 애인 시메인의 부친 동 고메스 백작을 결투로 쓰러뜨린다. 시메인은 자식된 의무로서 국왕에게 로드리그의 목숨을 살려달라고 호소한다. 이 의무감에 의해 정념을 초극하려는 경향으로서 코르네유의 비극은 의지 비극이라고도 불리며 이는 희비극의 외면적인 갈등 대립을 심리적으로 내면화시켰다는 점에서 획기적이었다. 표현에도 대구(對句)의 명문이 많고 지금도 많이 애송되고 있다. 이 논쟁 이후 잠시 침묵을 지켜왔던 코르네유는 1640년, 로마 기사의 명예를 묘사한 <오라스>, 로마황제의 덕을 칭송하는 <신나>, 그리고 1643년에는 기독교 순교자의 숭고함을 주제로 하는 <풀뤼우크트>, 다음해에는 강렬한 에고이즘의 여자를 주인공으로 하는 <로드귄> 등 많은 명작을 내놓았으며 비극의 거장으로서의 지위를 굳혔다. 이러한 작품은 모두 의지와 정념을 대립시키면서 의지의 승리와 그것에 이르는 인간적인 고뇌를 웅장한 명문과 아름다운 서정을 교차시키며 묘사한 걸작이라 하겠다. 그 이후 희극의 명작 <거짓말쟁이 사내>(1644)를 발표, 몰리에르 이전의 사교계에 고상한 풍속희극을 제공한 공적은 크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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