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헤르만 괴링(Hermann Gö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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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인가요?
헤르만 빌헬름 괴링(독일어: Hermann Wilhelm Göring, 문화어: 헤르만 게링그, 1893년 1월 12일 ~ 1946년 10월 15일)은 독일의 군인, 정치인이다.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나치당)의 초기 당원이자, 초기 나치 돌격대(Sturmabteilung/SA)의 지휘관을 지냈고, 게슈타포를 창설했다. 1935년 재군비 선언 이후에는 나치 공군의 총사령관(제국원수)으로 공군을 창설하고 육성했다. 그 자신이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전투기 에이스였다.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에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독일로부터 나라가 5년이나 박살나고 2000만명이 사망, 1000만이 부상당한 소련 수석 판사인 이오나 니키첸코가 길길이 날뛰며 군인들 총살형에 대해 반대해 군인의 사형 방법인 총살형이 아닌 교수형으로 결정되자 절망하다 사형이 집행되기 전날에 자신이 수감된 감방에서 자살했다. 생애 유년기 아이티 주재 독일 제국의 영사인 하인리히 에른스트 괴링과 그의 후처의 차남으로, 독일 제국의 알프스산맥과 가까운 지역인 로젠하임(바이에른 왕국령)에서 태어났다. 알베르트 괴링은 그의 동생이다. 3살 때인 1896년, 아버지가 알렉산드리아 주재 총영사직에서 은퇴하여 가족들은 함께 독일에서 살았다. 어린 시절 괴링은 뉘른베르크 가까이에 있는 작은 성(城)인 펠덴슈타인 성에서 자랐는데, 1913년까지 그 성의 주인은 어머니의 연인이자 아이들의 대부(代父)인 유대 사람 헤르만 에펜슈타인이었다. 헤르만 빌헬름 괴링은 유년시절을 부유하게 지냈다. 청년기 군인 생활 직업군인으로 훈련받은 뒤 1912년 장교로 임관되었으며, 초창기 독일 제국 공군에 들어가 제1차 세계대전 동안 맹활약했다. 제1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 괴링은 독일 제국에서 대표적인 공군 에이스였다. 1918년 독일의 위대한 비행사 붉은 남작 만프레트 폰 리히트호펜이 복무했던 유명한 비행대대의 지휘관이 되었다. 독일 제국이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연합국에 항복한 뒤 혼란기에 군장교들에 대한 민간인들이 푸대접한다 하며 몹시 분개하여 독일을 떠났다. 이후 그는 덴마크와 스웨덴에서 민간 비행사로 일했으며, 그 뒤 스웨덴의 남작 부인 카린 폰 칸트초프를 만나 그녀가 남편과 이혼한 뒤인 1922년 2월 3일에 독일의 뮌헨에서 결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