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렉상드르 뒤마(Alexandre Dum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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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인가요?
알렉상드르 뒤마(프랑스어: Alexandre Dumas, 문화어: 알렉쌍드르 뒤마, 1802년 7월 24일 ~ 1870년 12월 5일)는 19세기 프랑스의 소설가이다. 아들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와 구분하기 위해 ‘아버지’라는 뜻을 붙여 알렉상드르 뒤마 페르(프랑스어: Alexandre Dumas père)라 부르기도 한다. 때로는 대중 소설가라는 평을 듣기도 한다. 작품들의 대부분이 프랑스 역사를 바탕으로 하여, 교묘한 줄거리와 풍부한 공상으로 엮어져 있다. 대표 작품으로 《삼총사》, 《몽테크리스토 백작》 등이 있다. 생애 알렉상드르 뒤마는 프랑스 엔주 빌레르 코트레에서 태어났다. 뒤마의 할아버지는 포병으로 아이티에서 근무하였다. 그곳에서 아프리카계 케러비언 혼혈인이었던 마리 케세테 뒤마와 결혼하였고 빌레르 코트레로 돌아와 뒤마의 아버지인 도마 알렉상드르 뒤마를 낳았다. 도마 알렉상드르 뒤마는 프랑스 대혁명 당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휘하의 장군으로 활약하였다. 그가 이끌던 부대는 "아메리카 연대"라 불렸다. 뒤마가 태어난 1802년 무렵 도마는 퇴역하여 고향인 빌레르 코트레로 돌아온 상태였고 가세가 점점 기울자 집과 재산을 처분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뒤마 가 4세이던 1806년 사망하였다.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인해 뒤마는 정규 교육을 받을 수 없었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독서를 좋아하여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읽었다. 나폴레옹이 프랑스의 황제로 즉위하자 뒤마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야기는 유명해졌다. 그의 집안은 여전히 가난했지만 아버지의 명망으로 인해 귀족들과 알고 지내는 사이가 되었다. 1822년 부르봉 왕정복고가 일어난 후 뒤마는 파리로 가 막강한 권세를 누리던 루이 필리프의 루아얄 궁전 사무실에 취직했다. 경력 안정적인 직업을 갖게 된 뒤마는 잡지에 극본을 기고하기 시작하였다. 1829년 그의 첫 번째 단행본으로 출간된 희곡《 앙리 3세와 그의 궁정》의 성공으로 뒤마는 대중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같은 해 발표한 《크리스틴》 역시 호평을 받았으며 이듬해인 1830년 그의 고용주였던 루이 필리프가 시민왕으로 즉위한 후 뒤마는 《찰스 10세》를 출간하였다. 1830년대 중반 프랑스는 산업화를 겪으며 빠르게 변화하는 중이었다. 이에 따라 작가들의 경향 역시 공화주의를 지지하는 부류와 왕정 복고를 지지하는 부류가 폭 넓게 분포하고 있었다.